Exercise2010. 3. 20. 23:43

[이동기] 격투기 선수들이 주목하는 초특급 훈련, 크로스핏(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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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의 칼럼 말미에, 격투기에서 요구하는 체력과 체력 훈련에 대해 언급하겠노라고 쓴 바 있습니다. 다른 칼럼과 달리 이런 실용에 해당되는 칼럼은 일천한 제 경험과 지식을 동원하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전문가와 해당 현장에 취재를 가는 것이 더 정확하겠지요. 따라서 이번 주는 칼럼이라기 보다는 기사에 가깝습니다.

저에게 지난 해 최고의 격투기 경기를 꼽아보라고 한다면 물론 여러 경기가 있겠습니다만 사실 제게는 김세기 vs. 권민석의 경기가 거의 탑이 아닐까 합니다. 그 경기는 THE KHAN 2로써 기술적 내용, 박력, 끈질김 등에 있어 메인 이벤트가 가려질 정도의 최고의 경기였습니다. 그 경기는 말 그대로 승패와 관계없이 두 선수 모두 승자였고 우리나라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기립박수를 받아내었던 명승부였습니다. 심지어 중계석에 있던 저마저도 반쯤은 일어서서 박수를 쳤습니다. 기량과 기술도 대단히 무르익었던 양 선수였습니다만 무엇보다 대단했던 것은 연장전까지 가는 양 선수의 체력전, 특히 김세기의 체력이었습니다.


김세기(오른쪽) 출처: Xportsnews.com

이번 칼럼의 소재는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훈련법인 크로스핏(CROSSFIT)이며 만날 사람은 선수가 아니라 바로 그 김세기의 훈련을 담당했던 이근형 트레이너입니다.

이근형 트레이너는 수영과 유도, 보디빌딩을 했던 사람입니다. 부끄러움이 많아서인지 얼굴을 잘 공개하지 않는 편입니다만 간단하게 말해서, 김동현 선수와 비슷한 신장과 체형이되 훨씬 더 타이트하며 동시에 굵습니다. 그는 현재 한국 유일의 크로스핏 레벨2의 자격을 가지고 있는데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먼저 레벨1을 보유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국내에서는 이미 다수의 연예인, 격투기 선수를 가르쳤고 그리고 저명한 월간지에 크로스핏을 알리며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크로스핏 레벨1은 10 여종에 달하는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단계이며, 이근형 트레이너가 보유하고 있는 레벨2 자격은 크로스핏에서 공개된 시험을 통해 발급하는 자격 중 가장 최상위 자격 입니다. 즉 레벨1 → 크로스핏 세부 자격(케틀벨, 파워리프팅, 런닝 등) → 크로스핏 레벨2 순서가 됩니다. 현재 크로스핏 닷컴에 기재된 레벨2 트레이너 명단을 살펴보면, 아시아에서는 싱가폴과 일본에 이어서 세 번째이며 세계적으로는 300여명의 레벨2 중 한 명입니다.


이근형 트레이너 출처: 맨즈헬스

이번 칼럼은 인터뷰 형식을 빌렸으며 격투기 쪽에서 몸담고 있는 제 입장에서 몇 가지의 질문을 골랐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새롭게 각광 받고 있는 크로스핏의 세계를 알아보지요.

문) 국내 유일의 레벨2 크로스핏 트레이너라고 들었다. 크로스핏의 라이센스 체계를 알려달라.

답) 가서 시키는대로 열심히 운동하면 발급되는 레벨1과는 달리 레벨2는 굉장히 까다로운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레벨2 테스트는 매 테스트마다 겨우 한 명이 합격하는 경우가 많고 사실 대부분의 지원자는 첫 시험에 탈락한다. 나는 운이 많이 따라 주었고 언어를 비롯한 모든 핸디캡이 오히려 스스로를 더 채찍질 했기에 합격할 수 있었다. 개인적인 계획으로는 순서는 조금 바뀌었지만 조만간 크로스핏과 관련된 다른 자격들과 공부 때문에 미국에 몇 번 더 다녀와야 할 것 같다. 현재는 '크로스핏 한국' 카페(www.cafe.daum.net/crossfitcorea), (www.crossfithankook.com)를 운영하고 있고 같은 이름의 크로스핏 공식 지부 대표를 맡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본명보다는 BADBOY라는 인터넷의 닉네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문) 일반적인 헬스클럽에서 가르치고 행하는 웨이트 트레이닝과 크로스핏의 웨이트 트레이닝은 어떻게 다른가?

답) 크로스핏은 보디빌딩처럼 이두근이나 삼각근, 대흉근 등을 발달시키기 위한 부위별 운동, 그에 따른 방식인 고립훈련을 거의 하지 않고 또 머신을 사용하지 않는다. 크로스핏은 ‘기능향상’ 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크로스핏에서 정의하는 기능향상 운동이란 다중관절 운동이며 코어와 힙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하고 체육관 안에서가 아닌 실제 세상 속에서 인간의 신체가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동작을 흉내 낸 운동이어야 한다. 일반 헬스클럽에서는 역도를 가르치거나 체조의 링 운동을 하지 않는다. 보디빌딩과 크로스핏의 가장 큰 차이는 '목적' 입니다. 목적이 다르면 수단도 달라져야 한다.



문) 흔히 말하는 식스팩의 몸짱 만들기에 있어서, 보디빌딩 시스템과 크로스핏 시스템의 차이가 있다면?

답) 무엇이 우선이냐 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식스팩의 몸짱을 '만들기 위해' 보디빌딩 훈련을 했더니 신체능력도 좋아졌다는 것과, 모든 영역의 신체능력을 '만들기 위해' 크로스핏을 했더니 몸도 같이 좋아졌다는 것의 차이다. 이런 선택은 개인이 하는 것이니 무엇이 좋다 나쁘다 할 필요가 없다.

문) 현대인들은 욕심이 많다. 강력한 체력을 원하고 건강을 원하며 동시에 좋은 몸매를 원한다. 크로스핏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답) 크로스핏은 크로스핏 그 자체를 강요하지 않는다. 누구나 개인의 목적에 맞게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크로스핏을 했더니 내가 만족할 만큼 몸매도 좋아졌고 체력도 좋아졌다면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고, 체력은 좋아졌지만 몸매는 조금 더 다듬고 싶다면 크로스핏과 보디빌딩식 훈련을 병행 할 수도 있다. 또한 지구력을 조금 더 향상시키고 싶다면 크로스핏을 하면서 지구력 트레이닝을 병행해도 좋고 아예 보디빌딩 훈련을 수개월 해서 몸매를 어느 정도 만든 뒤 다시 크로스핏을 하는 것도 좋다. 물론 나는 크로스핏 트레이너니까 '그냥 크로스핏만 해도 다 된다' 를 추천한다(웃음).


여성 크로스핏터들

문) 크로스핏을 봤을 때 학교 운동부 시절에 괴로웠던 체력 훈련들이 생각났다. 어떤 것은 똑같은 것도 있고 체계는 유사하다고 생각됐다. 학교 체육, 특히 레슬링과 유도 같은 투기 종목에서 체력 훈련을 시킬 때는 일률적으로 같은 것을 주입한다. 프로그램도 그다지 변화는 없다. 하지만 분명히 효과는 강력한 편인데 크로스핏이 그와 다른 점이 있다면?

답) 이 위원께서도 같은 말을 했지만, 투기 종목 출신은 물론이고 야구나 축구처럼 구기 운동 선수 출신들도 크로스핏을 소개하고 또 시켜보면 하나같이 “어? 이거 예전에 운동할 때 다 하던 건데” 라고 말한다.

학교 체육은 실제로 굉장히 기능적으로 뛰어난 훈련들이 적용되고 있고 이는 소수의 우리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거두는 결과만 보더라도 효과는 검증되었다고 본다. 크로스핏과의 차이점은 의외의 대답이 될 수도 있는데, 첫째 큰 차이점은 바로 '안전' 이다. 하드 트레이닝이지만 탈진시킬 정도의 트레이닝이 되어선 안된다. 이것은 효율성에도 문제가 되지만 선수를 부상에 노출되게 한다. 크로스핏에 적용되는 운동들의 가장 큰 원칙은 첫째가 안전이다. 예를 들어 에어스쿼트를 할 때 허리는 아치로 유지하고 뒤꿈치에 체중을 싣게 하여 정확한 자세로 운동하는 것은 어떤 운동 효과를 노리기 이전에 '안전하게' 스쿼트를 하기 위해서다.

두 번째 차이점은 질문 내용에도 있듯이 프로그램의 다양성과 변화다. 체력 훈련은 '예측될 수 있는' 체력 훈련이 되어선 안된다. 크로스핏 훈련 원칙에 'Constantly Varied' 라는 말이 있는데 그 의미는, 일상이든 경쟁 스포츠에서든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듯 체력 훈련 역시 예측된 훈련을 진행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더 다양하고 예측 불가능한 훈련을 적용하는 것이 더욱 랜덤한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육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학교 체육에 크로스핏의 이런 개념을 적용하여 해당 종목에 맞게 활용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문) 김세기 선수의 트레이너로 활약했다고 들었다. 김세기를 맡기 전과 훈련시킨 이후의 차이점을 생각하면 어떤 점이 달라졌나?

답) 반복된 지구력 위주의 훈련 때문에 격투기 선수의 몸 이라기 보다는 마라토너에 가까웠다. 시작할 때는 약간의 자극이 필요했기에 'Fran' 이라는 WOD를 프로그램 수정 없이 시켰다. 사실 어떤 엘리트 선수라도 처음 크로스핏을 접할 때는 반드시 프로그램을 줄여서 시킨다. 여기서 6분 이내의 기록이면 상급자, 3분 이내의 기록이면 엘리트 수준 이라고 볼 수 있는데 사실 김세기도 완주는 못했다.

하지만 지금의 김세기는 파워와 스태미너가 크게 향상 되었고 동시에 체력에 대한 자신감이 시합에 대한 자신감으로 나타난다는 점이 굉장한 변화라고 보여진다. 특히 겉으로 보여지는 체형 또한 누가 봐도 더 좋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시합이 끝나고 김세기 선수가 “코치님, 시합하는데 숨이 하나도 안차요” 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문) 김세기 선수는 킥복서이다. 크로스핏은 힘이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킥복싱보다는 MMA에 더 적합할 것 같다. 킥복서 김세기에게 어떤 훈련을 시켰는가?

답) 킥복서든 MMA 선수든 필요한 체력의 영역은 같다. 더 비약시킨다면 신체 능력의 전반적인 향상은 옆집 할아버지건 남자건 여자건 격투기 선수건 다들 똑같다. 크로스핏은 누구에게 맞춰 프로그램을 수정한다고 해도 그 중량과 양을 조절할 뿐 종류를 바꾸지는 않는다. 김세기 선수에게 적용했던 WOD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크로스핏의 목적은 '신체 전반적인 능력 향상' 이며, 격투기 선수를 위한 크로스핏 프로그램이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면 WOD 속에 킥이나 펀치 등 자신의 종목에 맞는 훈련들을 상당 수 적용 했다는 점이다. 또한 김세기 선수는 지구력에 비해 스트랭스에 취약점을 보였기 때문에 기본적인 WOD 이외에 스트랭스 향상을 위한 보충 훈련들이 추가 되었다는 것 정도인데 이것은 킥복싱, MMA 선수들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할 것은 아니다.

문) 체력의 영역은 같다, 신체 능력의 전반적인 향상 추구는 같다, 하지만 추가되는 보충 훈련에서 적용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의 의미는?

답) 크로스핏의 훈련 원칙과 WOD를 활용 하되, 그 종목에 맞게 새롭게 프로그램을 디자인 할 필요가 있다. 말 그대로 디자인의 의미다. 예를 들어 UFC 룰은 5분 3라운드인데 이것은 15분~20분 이라는 시간의 영역 속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쏟아 낼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2시간, 3시간을 달리는 것 보다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김세기 선수에게도 마찬가지였는데 처음에는 일반적인 WOD를 그대로 적용했고 조금씩 선수를 관찰하면서 프로그램을 새롭게 디자인 했다.

한 가지 언급해야 할 것은 크로스핏은 GPP(General Physical Preparedness)이고 이것을 어떤 특수 종목의 선수에게 적용할 때는 세심한 관찰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물론 WOD를 있는 그대로만 적용해도(예를 들어 크로스핏 카페 등에 매일 올라오는 순서대로) 신체 전반에 엄청난 향상을 느낄 수 있겠지만 선수 개개인에 맞게 좀 더 디테일한 프로그램 구성, 즉 크로스핏 그대로가 아닌 크로스핏을 활용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적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실제로 외국의 선수들도 그렇게 하고 있다.

다시 말해 크로스핏은 모든 종목의 스포츠에 활용될 수 있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크로스핏의 오리지널 프로그래밍은 광범위하고 무작위한 스케쥴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테면 ‘최대한 빠르게’ 라는 전제 하에 100m를 이동하기 위한 능력과 10km를 이동하기 위한 능력 두 가지 모두를 가지자는 거다. 하지만 이런 것은 Sports Specific 훈련이라고 볼 수는 없다.



문) 우리나라 격투기 체육관, 선수들의 체력 훈련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답) 예전에는 너무 지구력 의존 훈련이 많았고 체력 향상을 위해선 무조건 달리는 것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웨이트 트레이닝에 대한 중요성을 많이 인식하고 있고 케틀벨이나 써킷 트레이닝도 많이 보편화 되었다. 물론 크로스핏 스타일의 훈련이나 써킷도 좋지만 '체력' 이라는 올바른 정의가 더 필요하다고 본다.

크로스핏에서는 이런 얘기를 꺼낼 때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 선수들의 예를 자주 드는데, 트라이애슬론 선수들은 체력이 좋습니까? 라고 물어보면 대부분은 예라고 대답한다. 틀리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맞는 답은 아니다. 트라이애슬론 선수나 마라톤 선수들은 '지구력' 이라는 체력의 한 부분에 뛰어날 뿐 '체력' 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반대로 적용한다면 역도 선수에게도 체력이 좋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파워' 라는 체력의 한 부분에 뛰어난 사람들이니까. 유연성과 민첩성, 정확성, 신체 협응력 등 체력을 결정하는 요소는 더 많고 이러한 체력의 모든 영역에 다 뛰어나야 체력이 좋다고 말할 수 있다. 유산소 시스템 활용 능력 뿐만 아니라 메타볼릭 컨디셔닝을 통한 뛰어난 에너지 활용 능력, 힘과 파워, 스태미너 등등. 격투기 선수들은 이러한 모든 체력의 요소들을 다 필요로 한다.

격투기 관장들께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격투기 선수들을 마라토너로 만들지 말아 주세요"

다음 칼럼에서 계속됩니다

Posted by 신의물방울